능소화는 장마철에 담장이나 벼랑을 기어오르며 피는 꽃으로 나팔꽃같이 생긴 담황색의 꽃입니다. 능소화 넝쿨은 어찌나 벼랑을 잘 기어오르는지 능소화의 뜻 자체가 ‘하늘로 기어오르는 꽃’이라고 합니다. ‘기어오르는 꽃’이라 그랬는지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아닌 평민들이 이 꽃을 담장에 심으면 크게 혼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반댁 담장에만 심는 꽃이라 하여 ‘양반꽃’이라고도 하였답니다. 한때 이 꽃은 맹독을 품고 있다고 전해지기도 하였지요. 그래서 손으로 건드리는 것은 물론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멀어버린다는 ‘금단의 꽃’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능소화를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정말 눈이 멀까?’ 하는 의구심에 조심스럽게 능소화를 만져본 일이 있습니다. 그 손으로 슬쩍 눈도 비벼 보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자라서는 냄새도 맡아보고 살에 비벼도 보고 맛도 보면서 능소화에 얽힌 금기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리도 아름다운 꽃에 그런 맹독성의 전설을 왜 붙여야 했을까’ 라는 질문이 이 동화를 쓰게 하였습니다.
옛날 옛적, 어느 궁궐에 "소화"라는 아름다운 궁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왕의 눈에 들어 하룻밤 사이에 후궁으로 신분 상승을 하였답니다. 왕은 새로운 궁궐을 지어 그녀의 처소를 마련해주기도 하였으나 어느 날부터인지 그녀의 처소를 찾지 않았답니다, 왕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불행한 삶이 그녀에게 시작된 것이지요. 기다림에 지친 그녀는 결국 상사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녀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은 왕의 처소가 보이는 담장 아래 자신을 묻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유언대로 왕의 처소가 보이는 담장 아래 그녀를 묻었는데 그녀의 무덤에서 뾰족한 새싹이 나오더니 넝쿨이 되어 담장을 기어올라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능소화입니다. 그래서인지 능소화의 꽃말은 그리움과 기다림입니다.
그리움이나 기다림으로 점철된 인생이란 권력에 희생된 아픈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지요. 이 동화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소화와 능화의 이야기입니다.
돌밀원은 제가 만든 정원 이름입니다. ‘인형이 가득한 정원’, ‘돌조각이 가득한 정원’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인형 놀이를 하며 놉니다. 돌인형, 목각인형, 헝겊인형....이 나이에 아직도 인형 놀이를 한다면 남들이 웃겠지요만 변을 하자면 저는 그것들을 통해 ‘인생 놀이’를 한 것 같습니다. 놀다 보니 인형마다 이름이 생기고 사연이 붙어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이제 저는 눈이 침침하여 바느질이 어렵습니다. 다만, 만들어 놓은 인형이 쓰레기가 되기 전, 인형들의 이야기가 제 머리에서 사라지기 전, 저는 그것들을 정리하여 ‘인형 동화 책방’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누군가의 심심한 마음에 재미가 되고 슬픈 마음에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