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의 고향 인근 마을에서 대여섯 살 된 소녀가 실종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깊은 산골 마을에 살던 소녀는 어른들을 따라 초등학교 운동회에 구경 나왔다가 어른들의 손을 놓쳐 그만 길을 잃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이 경찰력까지 동원해 학교 안팎을 샅샅이 찾고 인근 마을까지 다 뒤지고 다녔지만 소녀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피가 마르게 소녀를 찾아 헤매는 사이, 자기네 집이 산속이라는 것만을 기억하는 소녀는 홀로 울며불며 산으로 기어오른 것이었습니다. 밤이 오고, 다시 아침이 오고, 며칠 밤이 더 지나는 동안 소녀는 산속을 홀로 헤매고 다니었습니다. 며칠 뒤 소녀는 제비꽃이 만발한 작은 계곡에서 한 나무꾼에 의해 싸늘하게 식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얼마나 산속을 헤매고 다녔는지 온몸은 가시에 찔리고 긁혀 성한 곳이 없었고 보드라운 발은 피멍이 들어있었습니다. 얼마나 꽃잎을 따먹었는지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바위 위에 검정 고무신을 가지런히 벗어놓은 채 물을 먹는 자세로 죽어있었습니다. 갈증과 배고픔에 계곡물을 마시려고 계곡에 엎드렸다가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한 채 그대로 물에 코를 대고 죽었던 것이지요.
그 일로 당시 인근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함께 울었습니다. 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혀를 차며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아기들은 집을 잃거나 길을 잃으면 본능적으로 위쪽을 향해 올라간단다. 그걸 모르고 동네만 뒤지다가 아기를 영영 놓쳐 버린 거야.’ 제 마음속에도 그때 그 소녀에 대한 안쓰러움과 슬픔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여 50하고도 수 년이 더 지난 지금, 그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번 ‘제비꽃 전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실 속에서 소녀는 안타깝게 죽어 갔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살렸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나마 소녀를 살려보고 싶은 저의 회한이겠지요.
돌밀원은 정원 이름입니다. ‘인형이 가득한 정원’, ‘돌조각이 가득한 정원’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인형 놀이를 하며 놉니다. 돌인형, 목각인형, 헝겊인형....이 나이에 아직도 인형 놀이를 한다면 남들이 웃겠지요만 변을 하자면 저는 그것들을 통해 ‘인생 놀이’를 한 것 같습니다. 놀다 보니 인형마다 이름이 생기고 사연이 붙어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이제 저는 눈이 침침하여 바느질이 어렵습니다. 다만, 만들어 놓은 인형이 쓰레기가 되기 전, 인형들의 이야기가 제 머리에서 사라지기 전, 저는 그것들을 정리하여 ‘인형 동화 책방’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누군가의 심심한 마음에 재미가 되고 슬픈 마음에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